공식 명칭 '마법청', 비공식 명칭 '대마청'
1999년, 세기말, 세계는 바야흐로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종말론, 음모론, 휴거론 등등… 인류는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 놓여있었고, 그 시대의 분기점에서 마법사상 최중최대사건이라 불리는 마법재해연속발생사건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낸 것은 다름 아닌 마법소녀! 그러나 역사상의 여타 중차대한 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도 가장 비과학적인 영역을 포착해 미신의 수면으로 끌어냈다는 것이겠지요. 대중은 예전만큼 어리석지도 순순하지도 않고, 선명한 카메라나 무선 전화기는 더 이상 마법소녀들이 신화의 영역에 남기를 허용치 않았습니다.
세계 각지에서는 마법소녀의 존재를 규명하고 찬양하고 우려하다 마침내 하나둘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마법소녀를 인류의 일원이자 공익의 수호자로 인정하는 일, 즉 마법소녀의 공인화지요! 2000년, 대한민국은 대마법재해관리청(이하 마법청)의 전신이 되는 특수재난대응위원회를 설립했으며 이듬해 이를 개편해 현재의 마법청을 발족하면서 마법안전국 반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현재의 대마법재해관리청은 대마법재해정책의 기획·종합·지원, 마법재해대응과 인명구조, 마법재해관리관의 육성·복지·보호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입니다. 오늘도 마법청에 등록된 마법소녀들은 대한민국의 마법안전을 위해 공무를 수행한답니다.
약칭 '마법관'
마법소녀가 되는 법?
대뜸 이렇게 말하니 마법소녀가 되는 방법이라도 알려줄 것 같지만, 비결이랍시고 대치동과 유튜브를 전전하는 속설들은 전부 정부에서 실효가 없다 입장을 내놓은 바 있지요. 그러니 여기서는 보다 현실적인 의미, 즉 마법소녀로서 활동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까요?
흔히 마법소녀와 마법재해관리관(이하 마법관)을 통틀어 ‘마법소녀’라 부르는데, 실무를 다루는 입장이라면 이를 구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마법소녀가 ‘적성’이라면 마법관은 ‘직업’, 즉 모든 마법소녀가 마법관으로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마법소녀로 각성해도 그 능력이 미미하거나 기타 사유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마법소녀 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렵겠지요.
따라서 마법소녀로 각성한 사람은 우선적으로 관할 구군 및 시도청에서 마법소녀 등록을 마쳐야 합니다. 능력 검정과 교육 수료 등을 거쳐 마법소녀로 등록하는 것에 그친다면, 정기적으로 마법소녀 자격을 갱신하거나 국가비상사태에 호출되는 것 외에는 이전과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사회 혼란 방지를 위해 일반 대중에게 마법소녀로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니,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요.
하지만 이 중 마법소녀로 활동 가능한 대상자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마법재해관리관이 되느냐, 아니냐.
재해 현장을 최초로 발견했다든가 해서 어쩌다 마법으로 사람을 도우며 살 수는 있겠지만 범죄나 재해의 수준에 달하는 사건에 개인이 개입했다간 큰 손해를 초래할 수 있겠죠. 또 마법의 사적 이용이 세상에 미칠 여파는 얼마나 크고요. 이처럼 마법재해관리, 쉽게 말해 마법소녀 활동은 경찰이나 소방처럼 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하기에 국가에서는 이를 엄중히 ‘공무’로 규정합니다. 즉, 마법관이 되지 않고서는 마법소녀로 활동할 수 없어요!
마법관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어렵지 않은 시험과 교육을 거쳐 7급 특정직 공무원으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규칙적인 근무시간도 환경도 없고, 국정원처럼 정체를 기밀에 부쳐야 하는 특성상 마법소녀에게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한에서 겸직이 허용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마법소녀 활동을 우선해야 하기에 여러 직업을 병행하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어요. 비상근무 명단을 보고 시기를 짐작해 역할갈등을 미연에 방지해야겠지요?
마법관은 대부분 파견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전국 순환근무를 한 뒤 연고지와 희망사항을 배려해 배치됩니다. 마법재해의 인재적 특성상 인구에 비례해 마법관을 배치하기 때문에, 지방의 경우 넓은 지역을 홀로 담당하는 마법소녀가 존재하기도 해요. 하지만 대체로 지방 마법재해관리서당 여러 마법소녀가 배치되어 하나의 팀을 형성하죠. 일종의 유닛이랄까요!
내근직 역시 존재합니다. 이들은 비전투계 위주로 선정되어 마법재해의 예방, 청 내 행정, 인사, 예산, 장비, 대외업무 등을 담당하나, 긴급상황 발생 시 현장 출동도 겸임한답니다.
마법관을 희망하지 않는 마법소녀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설에 따르면 마법소녀로 각성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타성이나 적극성, 책임성을 전제한다잖아요? 또 다른 사리사욕으로 마법관이 되면 좀 어때요, 세상을 구하는걸요? 단 한 명의 마법소녀라도 국가로서는 놓치기 아쉬운 인재이기 때문에, 보기 드물게 강한 마법소녀가 탄생하면 스카우터가 찾아와 간곡한 제의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법소녀라는 직업 자체부터 안정적이지가 못하긴 합니다. 무엇보다도 활동을 오래 이어가기 어려운 것이 대다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많은 마법소녀가 5년 안에 초심을 잃고 능력을 잃지만, 개중에는 장기간 활동을 지속하는 백전노장도 있다고 하네요!
참, 미성년자 마법소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마법소녀 특성상 청소년이 전체 마법소녀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는 하죠.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청소년 근로기준법에 따르고, 성인과 달리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에 직계존속 등에게 마법소녀임을 밝히는 것 역시 필수입니다. 이 과정에서 법정대리인과 마찰이 발생하기도 해요. 창작물과 달리 현실에서 마법소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네요!
2021년의 마법소녀
현대 2021년, 마법소녀는 세계의 수호자이자 인류의 동반자로 거듭났습니다. 어딜 가나 마법소녀에 관한 뉴스, 공익광고, 채용공고 등을 볼 수 있고 인터넷에도 마법소녀 클립이 넘쳐납니다. 심지어는 마법소녀 마재 격퇴 라이브나 예능, 토크쇼 등 일각에서는 쇼 비지니스화 경향을 띠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기말의 사건이 엄청났다고 해도 왜 최근에야 와서 마법소녀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또 문화마다 마법소녀의 이미지가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은요?
20세기에 발명된 무선통신은 미디어믹스의 확장을 낳았고, 이는 인간의 상상력의 무한한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양의 마녀 코미디물이라든가, 동북아시아의 마법소녀물 역시 20세기부터 부흥기를 맞기 시작했으니 인류가 ‘마법을 쓰는 젊은 여성’을 ‘마법소녀’라 인식하는 집단 무의식이 형성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자신을 마녀, 마법사, 무녀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던 마법소녀들도 세계의 ‘마법소녀/Magical Girl’라는 명명에 편입되기에 이릅니다. 정의(定義)가 실존을 낳은 셈이죠!
이후로 이능력자물이나 수퍼히어로물이 등장해 가미되며 마법소녀계에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만들긴 했죠. 1980년대에 데뷔한 마법소녀와 2020년대에 데뷔한 마법소녀가 상이할 것은 명백하겠죠. 역시 무얼 보고 자라느냐는 정말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마법소녀에 대한 시선은 다원화된 국제화사회만큼이나 천차만별인 편입니다. 지금보다 더한 통제를 가해야 하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 사람들도, 좀 더 활약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요. 히어로로 숭배하는 팬들도, 녹을 먹으면서 일을 안 한다고 비난을 일삼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마법소녀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깊어지는 법. 수퍼히어로물에도 빌런이 있는데, 마법소녀라고 왜 없겠어요? 더구나 한때는 마녀라는 악명 혹은 오명을 떨치던 존재들, 역사상의 몇몇 마법재해들은 마법소녀들의 소행이라는 추측도 만연합니다. 초심이 흔들리면 마법소녀로서의 유지도 어려울 텐데, 이 마법범죄자들은 비틀릴지언정 최초의 소망을 유지하며 활동하기에 동화 같은 자정이 불가능하죠. 때문에 이런 마법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전담팀 역시 각국의 마법청 내에 설립되어 있답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마법 연구와 재해 대응, 마법관 육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니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의 중앙통제식 행정은 마법안전력을 드높이는 데 마법소녀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지요. 공무원증으로 가공되어 다기능을 수행하는 변신 아이템이나, 일정 단위 사업장마다 담당 사무관을 배치해 마법소녀의 일상 유지를 돕고, 또 마법소녀 노동조합의 활동도 빠트릴 수 없죠! 은퇴한 마법소녀의 재사회화를 위해 마법청 내근직 등 관련 공기관으로의 취직을 돕는 일 역시 노조의 성과랍니다!